6.25전쟁 천안7.8전투미군 후퇴지역 작전

천안역사문화연구실장 김성열.

편집부 2014-07-07

▲     © 편집부
6.25전쟁은 어이없는 일방적 북한 도발 전쟁이었다. 6월28일 3일만에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하는 전쟁이었다. 아직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은 대한민국이 북침하여 일으킨 전쟁이라 우겨대는 럭비공 같은 정권이다.

유엔과 세계는 북한의 남침을 불법 침략전쟁으로 규탄하고 즉시 7월1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보병 제24사단 제21연대 스미스 특임부대를 한국 서부전선으로 이동 7월3일 오산전투에 투입한다.

국군은 평택에서부터 동부, 중부 전선을 분담하고 경부선을 중심으로 서부전선은 미국 육군의 지연작전 지역이 되었다. 서울이 인민군에 점령당하고 한강이 폭파되고(9/28) 수원이 적진에 들어가고 계속 인민군에 밀리는 전황에서 후퇴작전이 지시되었다.

천안경찰서 김종대 서장은 경찰대원 234명을 완전무장하여 전투병력 체제로 정비하고 피난민을 가장한 후방 인민군을 검색하여 처리하면서 주요시설물 경계, 이동순찰 경비체계, 민심안정 계도, 지서 보안 조치를 강화하면서 치안 확보에 총력을 다 하였다.

천안 유치장에 수감 되어 있는 범법자들 85명과 보도연맹 22명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천안경찰서 김종대 서장은 전향 각서를 받은 좌경인물들인 보도연맹 소속 관리 대상자들을 지혜롭게 가려 처단하라는 지시를 받고 모두 훈방조치 했다고 한다.

평택, 성환, 안성방면에서 후퇴하는 미군육군 보병 제24사단(사단장 딘 소장) 제21연대와 제34연대 병력은 읍내를 지나 도리티 고개 쪽으로 철수하였다.
 
아산방면으로 우회 침입하는 인민군 병력은 탱크를 앞세우고 백석동, 신방동 방명과 후퇴하는 미군을 뒤따라 성거방면에서 천안읍내로 진입하면서 성환 방면 부대리 쪽에서 읍내로 철수하는 미군 제34연대 3대대를 포위 압박하였다.
 
제21연대 미군들은 안성으로부터 성거방면에서 전투 없이 도리티고개로 철수하였다. 7월7일 밤 천안읍내는 철수하지 못한 제34연대 3대대 병력을 돕기 위해 도리티 고개에서 포병들이 포탄과 조명탄을 쏘아 불야성을 이루었다.
 
삼성리 주민들의 전하는 말에 따르면 포탄 피가 산더미를 이루었다고 한다. 전쟁 후에는 탄피가 큰돈이 되었다고 한다. 마틴 연대장은 7월8일 아침까지 철수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부하들을 구출하기 위해 직접 작전에 뛰어 들어야 했다.
 
아침 8시 마틴 대령은 구성동길 민가 앞에서 인민군 탱크와 접전하면서 바주카포로 대항하였으나 탱크에서 마주 쏜 포탄에 맞고 온 몸을 구성동 길거리에 흩어져 산화하였다.
 
 연대장은 임명 받은 지 14시간 만에 전사하였다. 6.25전쟁 최초 전사한 연대장 대령이었다. 연대장을 잃은 제34연대 3대대는 7월8일 아침 천안읍내를 인민군에게 빼앗기고 구성동, 삼룡동 천안삼거리를 지나 도리티 고개로 일부만 철수하였다.
 
천안7.8전투에서 인민군에게 포위되어 철수 후퇴하지 못한 미군 34연대 3대대 장병 168명이 포로 되어 천안읍사무소 2충에 감금했다가 북쪽으로 이송되었다. 인민군과 피난민을 구별할 수 없는 이런 전투였고 부대 간 서로 연락하는 통신망 전선이 피난민들 보따리 묶는 끈으로 사용하기 위해 절취되는 이런 전투였다. 일본에서 항공편으로 급파된 미군 보병들은 인민군의 전력과 전황을 너무 가볍게 오판했다는 실수를 인정하는 전투였다.
 
극동사령관 맥아더장군도 한강 전투 현장을 정찰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인정했다. 천안경찰서 대원들은 7월7일 미군들과 같이 후퇴하여 연기군 금남면 전투에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인민군들과 첫 전투에 참전한다. 이 전투에서 오인영, 유인용, 임치수, 서태석 순경이 전사하고 윤재용, 전봉학 순경이 부상을 입었다.
 
천안경찰서 대원들은 대구에 집결하여 충남전투 경찰대에 편입되고 낙동강전투에 합세한다.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남한을 단숨에 속전속결 무력으로 밀어부처 공산화 통일을 하려는 통일전쟁 전략은 힘겹게 되어 갔다. 낙동강 이남 부산만 남겨 놓고 곧 끝낼 전쟁인 것 같았지만 전황은 인민군에게 힘겨운 전쟁 양상으로 돌변하였다.

유엔과 세계는 북한인민군이 일방적으로 벌인 남침도발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유엔군이 신속하게 참전하게 되었다.

무기병력 참전 16개국과 물자, 의료, 인도적 지원국 6개국이 자유 대한을 북한공산당 인민군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자유 평화 세계정신으로 속속 부산에 도착하였다. 세계는 유엔이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자유 대한민국을 저버리지 않았다. 7월3일 일본 규슈(九州)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육군보병 제24사단 제21연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제일 먼저 오산전투에 투입되었다.

호주 비행기라는 쌕쌕이 제트기와 미국 공군 무스탕 전투기가 천안상공을 누비고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인민군 공군 비행기는 처음에는 보였으나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완전히 유엔군이 제압하였다. 호주 비행기라는 쌕쌕이 제트기가 흑성산 상공에서 방향을 천안읍내 쪽으로 향해 내려 꽂으며 기관총을 쏘아대고 폭탄을 내려 뿌려대었다.
 
조금 후에는 천안역사가 불타고 인민군 보급 물자를 실은 화물차량들이 온통 불바다를 이루고 검은 연기가 타올랐다. 천안역 근방에서 불타오르는 화기와 연기는 천안근방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태극동맹 우익청년들은 암암리에 산속에 숨어들어 서로 동정을 살피고 전황을 서로 알려 주었다. 태극동맹 청년대원들은 국군과 유엔군이 전승하는 전황을 라디오로 듣고 입소문 작업을 통해 민심을 안정시켰다.
 
천안역 철로 반에 소속되어 있는 동지들은 화물열차 작전을 감행하여 인민군 수송 작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7월까지만 해도 인민군 통일남침전쟁이 모두 끝날 것이라는 전황은 전혀 다르게 돌변했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진 인민군들과 9월15일 인천상륙 작전으로 후방전선이 혼란에 빠지면서 인민군들은 퇴각명령을 지시하게 된다. 9월28일 천안 25일 서울이 수복되었다. 그러나 통일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으나 중공군 개입으로 1.4후퇴를 겪게 된다.

역사는 사람이 주인이다. 사람이 역사를 창조한다.

사람이 사건을 만든다.
사건의 주인공이 생각 사상 마음에 따라 사건의 성질과 내용이 특정지워진다. 그리고 시대의 사조나 이데오르기에 따라 사건이 특정 지워진다. 한국전쟁은 동서냉전으로 특정 지어지고 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 그 만행을 일으킨 대상국이 결코 감상적인 대상이 될 수 없다. 럭비공 같은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안보 절대 대상국이 그때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다.
공산주의 발톱을 사회주의 주체사상이란 허울로 화장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존재하고 있다. 무조건 북한을 옹호하면서 평화를 내세워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안보의식을 해이하게 조장하는 종북 세력을 분쇄해야 한다.

민족 완전독립 평화통일 성업 완수가 우리시대 정신이다. 
  
 
                                                                                       천안역사문화연구실
                                                                                                실장 김 성 열

기사입력 :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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