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와 코스모스

청현법률사무소 임상구 변호사.

편집부 2014-06-19

▲     © 편집부
무한히 긴 시간을 겁(劫)이라 하더군요. 겁은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뒤부터 다음 개벽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인간이 상상해 낼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의 단위를 말한다고 합니다. 찰나(刹那)와는 반대되는 말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1겁의 시간을 시적으로 표현했는데, 선녀가 사방 40리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내려와 비단 치마를 스치고 지나치면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끝나지 않은 시간이라거나(반석겁), 사방 40리 도성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놓은 뒤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도성안의 겨자씨가 다 없어져도 끝나지 않는 시간이라 하였습니다(겨자겁). 1~1.5㎜정도 크기의 겨자씨가 도성내 빽빽하게 채워졌을 경우를 가정하면 지구역사 45억 년은 잘해야 한두 평 정도의 겨자씨만 집어낼 수 있는 시간이군요.
 
 더 나아가 억겁이란 그 겁을 일억(億) 번 되풀이하여 우주의 탄생과 소멸까지도 초월한 시간이므로, 오래 살아야 겨자씨 하나 없어질 찰나 아닌 찰나를 사는 인간에게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일 것입니다.
 
石火光中(석화광중)에 爭長競短(쟁장경단)하니 畿何光陰(기하광음)이며, 蝸牛角上(와우각상)에 較雌論雄(교자논웅)하니 許大世界(허대세계)리요<채근담 中>. 즉 “부싯돌의 불빛 같은 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룬들 그 세월이 얼마나 길며, 달팽이 뿔 위에서 우열을 거두어 본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인생은 과연 덧없고 무상하기만 한 것일까요? 결코 그렇게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설이긴 하지만 138억 년전 우주의 시작도 결국엔 유리구슬만한 에너지 덩어리에서 빅뱅을 거쳐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약 60조개(성인기준)의 세포와 그 안의 수많은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의 우주에 다름 아닙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의 소우주이며 어마어마한 우주와 세상을 창조할 에너지원입니다.
 
부싯돌의 불빛 속에서 또 다른 우주가 태어났을 수도 있는 것이고, 달팽이 뿔위에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등 소소하게만 볼 수 없는 삶의 근원이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방향도 상대적인 것이어서 겁이든 찰나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하여 지금껏 세대를 이어오면서 인간이 보는 세상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코스모스(질서)가 있고 카오스(혼돈)가 있습니다. 일정한 패턴이 있는가하면 패턴을 깨는 변수와 예외적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해와 달이 뜨고 지고, 물이 밀려왔다 나가는가 하면, 사계절이 순환하며 거기에 맞춰 별들이 자리를 바꿉니다. 하지만 세상은 질서정연하지만은 않습니다. 음양과 오행의 조합이 어떠한 격국을 이루는가 하면 몇몇 괘의 등장으로 파격이 되기도 합니다.
 
수세기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는 간혹 유성이 날리거나, 일식과 월식이 찾아오거나 이상기후와 역병이 도는 예외적 현상을 두려워했습니다. 인간의 사회적 경험이 축적된 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원칙과 예외가 있으며, 질서와 혼돈상황이 있기도 합니다.
 
법학의 세계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자연법칙 하나를 소개드릴까 합니다. 열역학 제1 법칙은 ‘이 세상(우주)의 모든 에너지 총량은 불변한다'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 제2 법칙은 ’에너지는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엔트로피(무질서 정도)가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폐쇄된 계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상에 있던 에너지 하나는 개방되어 이어지는 다른 계로 이동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무질서 정도가 증가하는 게 물리법칙이라고 하나 외부의 계에서 에너지가 투입되면 엔트로피 증가를 막을 수 있습니다. 모두들 가슴 아파하셨겠지만 최근 불의의 사고로 2~300백여 소우주가 저 머나먼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패턴을 벗어난 예외적 현상이라기보다 오히려 예견된 패턴의 일부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무질서하거나 답답해지거나 악하거나 흘러가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할까요? 달팽이 뿔 위에 살든 겁과 찰나를 오가며 살든 엔트로피 증가를 막기 위해 성심껏 자신의 올바른 에너지를 세상에 투입해야 것,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자 선현들이 말씀했던 ’정의‘의 한 모습 아닐까요?

기사입력 : 2014-06-1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가장 많이 읽은 기사

URL 복사
x

PC버전

Copyright ⓒ 충남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