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인

청현법률사무소 임상구 변호사.

편집부 2014-03-15

▲     © 편집부
얼마 전이었습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사랑의 열매’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 자원봉사를 하셨던 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봉사활동을 하기 전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더 잘 헤아린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겠거니 생각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모금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고 하더군요. “크고 검은 차들은 시커먼 유리창을 거의 내리지 않아요. 그런데, 덜덜거리는 화물차들은 삐걱대는 유리창을 겨우 내리고 수고하신다며 천원, 오천원씩 선뜻 내놓고 가더라구요.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진짜 짠해지던 데요.” 그 분의 생생한 체험기가 어릴 적 여름성경학교 때 들었던 ‘착한 사마리아인’얘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 다 잃고 몸도 구타를 당해서 사경을 헤매며 쓰러져 있었다.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제사장은 옆으로 피하여 갔고, 레위 사람도 자기에게 피해가 올까봐 피해갔다. 하지만 유대인이 제일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자기 나귀에 싣고, 여관방에 데려다 주고 치료하여 주길 부탁하며 많은 치료비도 감당하는 선을 베풀었다.(신약성서 누가복음 10장 30-33절)>
 
유태인들은 사마리아인이 자신의 왕국을 침략했던 아시리아인과 유태계의 혼혈이라는 이유로 이민족 이상으로 멸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사마리아인들이 정통 유태인이자 종교귀족인 레위인들보다 낫다고 했으니, 결국 예수가 로마인이 아닌 유태인에 의해 십자가처형을 당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무튼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개인적 비난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법적 강제를 가하여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겠다고 논의된 것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입니다. 다만, 남을 도와줌으로써 자신도 큰 위험에 빠질 경우까지 타인에 대한 구조나 원조를 법적으로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규정하고 있는 서구국가에서는 “자신에게 위험이 없거나 또는 중대한 의무의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라는 제한하에 구조의무를 부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착한 사마리아인법이 있을까요? 일본형법을 빌려쓰던 의용형법 시절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있었지만, 1953년 형법의 입법자들은 형법전 심의 당시 6·25 전쟁으로 야기된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궁핍상태를 감안하여 이를 폐지하여, 형법 제271조 이하에서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하여 특수한 관계에 한해서만 구조의무를 강제하게 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2. 15. 선고 2010고단3873 판결 참조).
 
다만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7호에서 “자기가 관리하고 있는 곳에 도움을 받아야 할 노인, 어린이, 불구자, 다친 사람, 또는 병든 사람이 있거나 시체 또는 죽어 태어난 태아가 있는 것을 알면서 빨리 이를 관계공무원에게 신고하지 아니하면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벌한다”고 하여 구조신고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처벌도 약하고 사실상 사문화되었습니다.
 
한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제5조에서 “①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기관등에 신고하여야 한다. ②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의료를 위하여 필요한 협조를 요청하면 누구든지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2000. 7. 1. 시행)”고 하여 일반적인 신고 및 협조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뿐 위반시 처벌규정은 두지 않고 있으며, 2008. 6. 13. 신설된 제5조의2에서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선의의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한 자는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사상(死傷)에 대한 민사적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제받되,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減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위 응급의료법 규정 또한 엄밀한 의미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아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어쩌면 성서속의 사마리아인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자기 스스로가 ‘강도만난 자’처럼 힘들게 느껴지고 암담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방관자로 스쳐 지나쳐도 그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에게 진정어린 관심을 보냈던 일은 작은 기적의 표본이 되어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진심어린 관심이 기적을 만든다는 사실, 놀랍지 아니한가요?
 

기사입력 : 20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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