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심증주의

청현법률사무소 변호사 임상구.

충남신문 2013-12-01

▲     ©충남신문
나이 지긋한 노인 하나가 낙엽 떨어지는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두꺼운 책을 펼쳐들고 작게 소리내어 읽어가더니 이내 사색에 잠겼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젊은이 하나는 누군가를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핸드폰만 쳐다보다가 이내 벤치 옆자리에 앉습니다.
 
노인은 오랫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더니 옆자리의 젊은이에게 묻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그동안 살면서 잘못된 판단을 내린 적은 없었는가?’
 
젊은이는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아, 예~, 제가 하는 일은 매번 실수투성이인데다가 날마다 후회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그런데 어르신은 목사님이세요? 들고 계신 책이 성경책 같아서요.’라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아니, 나는 속세의 판사였는데 얼마 전 그만두었네. 이 책은 법전인데, 판사직을 그만두고 나서야 법조문 하나하나가 새롭게 읽혀지니 내가 내린 판단들 중에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네.’
 
‘어르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예전에도 정말 좋은 판사님이셨을 것 같네요.’
 
이내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젊은이는 노인에게 목례를 하고 기다리던 사람과 인사를 나눕니다. 노인은 다시금 나지막이 소리내어. 글을 읽어갑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증거재판주의. 1항.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2항.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08조 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 자유판단....무거운 추를 메단 날개...” 

형사사법제도의 최고이념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인데, 이를 위하여 고대에는 신판(神判)이라 하여 신의 계시를 기다리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피고인의 체중을 2번 달아 무게의 경중이 생김에 따라 유무죄를 판명하던지, 유독물을 먹게 한 다음 중독여부에 따라 유무죄를 판명하던지 하는 것이 그것이었고, 동양에서는 신의 사자인 해태(해치)를 판관의 곁에 두어 해태가 거짓말을 하는 자를 뿔로 받아버리는 것으로 상징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중세유럽이나 중국 진한시대 이후 규문절차(소위 원님재판, 원님이 기소하고 판결하고 집행하는 방식)가 정착되자 판관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신판과 같은 비합리적인 증거법직을 배제하기 위하여 국가는 소위 ‘법정증거주의’를 채택하게 됩니다.
 
 법정증거주의란 증거의 증명력 평가에 법률적 제약을 가하여 일정한 증거, 예컨대 ‘범인의 자백’이나 ‘2인 이상 신용할 수 있는 자의 증언’이 존재하면 반드시 유죄로 인정하게 하거나(적극적 법정증거주의), ‘시체’, ‘범행도구’ 등 일정한 증거가 없으면 유죄로 할 수 없도록(소극적 법정증거주의)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미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에 법정조건들을 입력하여 유무죄를 가리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그러나 천차만별한 증거의 증명력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실체진실 발견을 저해하였는바, 2인 이상이 거짓증언하면 죄없는 자도 죄인으로 만들 수 있으며, 자백존중주의는 결국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까지 성행시켰습니다(‘자백은 증거의 왕’).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혁명 이후 형사절차의 개혁과정에서 법정증거주의가 폐지되고 자유심증주의가 수립되기에 이르러 자유심증주의는 1808년 프랑스 치죄법에 최초로 명시된 후 제국의 형사소송 기본원칙으로 수용되었습니다.

자유심증주의는 법정증거주의의 반대말입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사실인정을 위한 증거의 실질적 가치를 법률로 규정하지 아니하고 전문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는 것이 증거의 가치판단에 있어서 그나마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다만, 그 자유로운 심증은 논리법칙과 경험법칙에 부합하여야 하며,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 즉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또한 자유심증주의를 통하여 합리적인 사실인정을 담보하기 위하여 현행법은 각종 증거능력의 제한, 증거조사과정의 합리화를 위한 당사자의 참여, 유죄판결의 증거설시 등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도 합니다(헌법재판소 2009. 11 26.자 2008헌바25 결정). 이 과정에서 법관은 자유롭게 증거의 취사선택을 할 수 있고, 모순되는 증거가 있는 경우에 어느 증거를 믿는가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겨지며, 법관은 동일증거의 일부만을 취신할 수도 있습니다.
 
신빙성이 없는 증인의 증언이라 할지라도 일정 부분의 증언을 골라내어 믿을 수도 있고, 또한 다수증거를 종합한 결과에 의해서도 사실인정을 할 수 있으며, 간접증거 또는 정황증거에 의하여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는 그 한계선상에서 방임으로 흐르거나 완벽을 향한 구속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이 신을 대신하려다 보니 생기는 필연적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청현법률사무소 변호사 임상구

기사입력 : 201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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